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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위치

소불고기 이야기

소불고기

 

  저희 메뉴에 소불고기가 있습니다.

  근데 이 메뉴가 시대적 변천을 거치며 참 어려운 메뉴로 전환됐습니다.

  제가 젊었던 시절, 한식당 어지간한 곳에서는 소불고기 백반이 기본으로 있었습니다. 다른 백반에 비해 더 비싼 메뉴죠. 

  1980년대까지도 보통 '불고기'라고 하면 당연히 소불고기를 말했지만, 어느 순간 숯불에 구운 돼지불고기가 등장해 시장을 장악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1900년대에는 소불고기가 식당마다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000년대 들어 일본의 와규가 소개되며 그에 대응하는 한우라는 용어가 전면에 등장했고, 이후 소고기의 등급이 매겨지고 등급별로 가격을 매기는 게 보편화됐습니다.

  즉, '좋은 소고기'와 '보잘것없는 소고기'라는 구분이 생긴 겁니다.

  지방 성분이 고루 박히게 키운 공장 제품 같은 소고기를 마블링이 좋다는 표현으로 번안해, 매스컴마다 온통 마블링 좋은 소고기를 소개하기 시작합니다. 

  건강은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지방이 많으니 당연히 맛은 좋습니다.

  그렇게 1등급 한우를 먹어 본 사람들 입에, 이제 예전 불고기는 싸구려 고기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어느 순간 식당에서 불고기를 주문하는 사람들은 1등급 한우 숯불구이를 먹지 못하는 사람들의 처지로 바뀐 거죠.

  결국 한식당들에서 소불고기를 취급하는 게 곤란한 상황이 된 것이죠.

  더군다나 일손도 많이 필요한 메뉴였습니다.

  자연스럽게 소불고기가 메뉴에서 사라지게 됐습니다.

 

  보통 소불고기에는 재료와 관련한 특별한 명칭이 하나 더 있습니다.

  '불고기감'

  그러니까 불고기로 사용할 소고기를 말하는 것인데, 다른 말로 가장 낮은 등급의 소고기입니다.

  양념을 하지 않고는 맛있게 먹기 힘든 소고기를 통칭해 '불고기감'으로 구분하고 판매하는 것이죠.

  근데 이 불고기감의 특징은 일명 칼잽이들이(도축업자) 다루기 귀찮은 부위입니다.

  소의 지방이 다량 포함된 부위를 그대로 무게로 계산해 유통합니다.

  아래 사진은 얼마 전에 들어 온 '불고기감' 소고기 1kg에서 '우지(소의 지방)' 부분을 제거해 모아 놓은 사진입니다.

  놀랍게도 아래 우지 부분이 400g입니다.  

소불고기감 1kg에서 제거된 우지 400g

  

  저희가 제공하는 소불고기는 이렇게 우지 제거 작업을 한 소고기입니다.

  왜냐하면 리뷰가 있는 배달 점포이기 때문입니다.

  과거에는 살코기에 붙어 있는 저 우지들을 전부 먹었지만, 지금은 제거를 해야 합니다. 

  1등급 소고기를 맛본 고객들 입에서는 종류가 다른 우지거든요.

  이번에 들어 온 소고기는 거의 오십만 원 어치인데, 저렇게 버려지는 부분이 거의 절반입니다.

  이걸 판매 가격에 반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배달 메뉴 설명에는 용감하게도 아래와 같은 문구를 넣었습니다.

  「 저희가 매입하는 소고기의 품질이 항상 일정할 수 없습니다. 확실한 것은 저희는 같은 가격을 지불하고 구매한다는 사실입니다. 품질이 이전과 달라졌다고 동네 작은 식당이 도매처와 다툼을 할 수 없는 처지고, 눈으로 보고 구매할 수 있는 환경도 아닙니다. 이런 부분을 이해하는 경우에만 주문을 부탁드립니다. 또한 소불고기 도착 분이, 제거해야 할 우지(돼지 비계에 해당)가 지나치게 많은 경우, 일시적으로 가격 변동이 생길 수 있는 점 이해 부탁드립니다. 」 

  말은 이렇게 했어도 사실은 좋은 소불고기감을 받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 사진처럼 폭탄급의 소고기가 반입되면, 속 상하기가 이만저만 아닙니다.

  원래 소불고기를 8,500원 하다가 얼마전에 떼어내야 할 우지가 너무 많아 9,000원으로 인상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큰 폭으로 인상해야 하는 데, 이걸 어느 고객님이 이해할 수 있을까요?

  결국 메뉴에서 빼는 게 가장 탁월한 선택이 되는 것이죠.

  제가 배달의민족 내에서 검색해 보니, 저희가 판매하던 것과 같은 방식의 옛날식 소불고기를 판매하는 업소가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오프라인에서도 은평구에 딱 한 집에 같은 방식의 소불고기를 판매하는 것으로 검색되네요.

  다 이유가 있는 것이죠.

  혹시 몰라 저희 불고기를 구글에서 사진 검색으로 해 보니, 일본 내 있는 불고기(일본어로 표기된)가 같은 메뉴로 올라오네요. 한국 내에는 이제 같은 방식으로 만드는 식당이 거의 다 사라졌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구구절절 말이 많은 것은, 사실 저희 메뉴 중 가장 민원이 많은 메뉴가 소불고기이기 때문입니다.

  우지를 저렇게 떼어내도 일부는 그냥 들어가기도 하고, 또 떼어낸 줄 알았는데 아닌 경우도 있습니다. 

  일단 양념에 재워지면 잘 구분이 안 되거든요.

  마음으로는 한국의 전통 음식 중 최고라 계속 취급하고 싶은데, 식당으로서 지나치게 많은 부담이 주어지는 메뉴입니다.

  게다가 요즘처럼 리뷰가 활성화되고, 또 배민에서는 이번 12월부터 주문 음식 취소 요건에서 고객의 입장을 더 강하게 반영해서 개편했습니다.

*고객이 주문한 음식과 눈에 띄게 다른 음식이 제공된 경우 취소가 가능
  이런 내용은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인 내용입니다. 음식이 배달 중 뒤섞여 사진과 많이 다를 수도 있으니까요.

*고객이 주문한 음식과 달리 주문 내역이 누락된 경우 취소가 가능

  이런 내용은 인간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인데, 예를 들어 소불고기와 공기밥을 주문했는데, 업주가 밥을 실수로 빼고 보냈다면 주문 전체를 취소하고 환불을 해주겠다는 것이거든요.

  배달음식 장사를 하는 게 무슨 죄인이 된 기분입니다.

 

  또 저희 메뉴 소불고기에서는 위 사진처럼 우지를 제거해도 일부는 남을 수 있는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고객에게는 클레임 대상이 됩니다.

  근데 1인 분 9,000원을 받으면서 그런 부담을 감수하는 게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배달 플랫폼의 힘이 커지다 보니, 얼마 전에는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전에 먹었던 김치볶음밥과 이번에 주문한 김치볶음밥 맛이 동일하지 않으니 환불을 해달라는 요구인데, 이게 고객이 저희에게 전화를 한 게 아니라 배달의민족에 전화해서 항의하고, 배달의민족에서 저희에게 전화해 환불을 요청한 사건입니다. 한마디로 배달플랫폼 내에서는, 기본적인 상식은 물론 기존의 보편타당한 질서도 다 무너지는 환경입니다.

   

  도매업자들도 가장 낮은 등급의 소고기라 소홀히 취급하는 경향이 있고, 도축업자는 어떻게든 우지를 제거하지 않고 유통시켜야 마진이 늘어나고요. 저희가 호주산 혹은 미국산 소고기를 구입하는 건데, 미국이나 호주에서도 저건 먹어도 되는 거라며 상품으로 포장해서 보내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거의 절반을 떼어 내야 하니, 그 일도 만만찮은 작업인데다, 가격을 그에 맞게 올리기도 어려우니 결국 포기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참고로 오프라인에서 저희와 같은 방식으로 판매하는 불고기는 반찬류가 조금 포함되기는 했지만, 1인 분에 2만 원인데 고기 양은 저희가 제공하던 양의 60~70% 정도더군요.

  저희 메뉴, 공기밥 포함 1인 분 10,500원에는 배달 관련 비용이 포함되어 있으니, 우지를 떼어낸 비용 등을 감안해서 계산하면 지금과 같은 배달 환경에서는 판매 불가입니다.  

  두서 없이 생각나는 바를 썻습니다.

  

  *낙지볶음밥의 낙지는 조금 다른 사례지만, 재료의 불균형 문제가 심각한데 바뀐 배민 정책에 대응하기 어려워 함께 판매 중지했습니다.